작업노트(Not in your dictionary, Bongcabulary 시리즈)
작업노트
기록된 정보를 얼마만큼 신뢰하는가요? 신뢰하던 <기록된 정보>가 정확함과 진실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가요?
여러분은 소통이라는 정보 교환의 과정에서 상대가 표현하는 언어적 부분 외에 속마음, 그러니까 내포된 뜻이 더 궁금해지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 더욱 확고해지지요. 그것이 선한 이유이든 그 반대의 이유이든 간에요. 오히려 후자의 경우 더욱 집요해 질 수도 있겠지요?
기록된 정보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나치의 선전장관 이었던 괴벨스의 말을 통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괴벨스는 위의 말과 같이 ‘나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한 사람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가?’ 라는 선동적 공격으로 반역자로써 궤멸시킨 적이 있어요. 다른 목적이 있는 정보의 일방적인 제시와 또 그것의 비판 없는 수용은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일상생활의 정보 교환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다는 것 역시 쉽게 알 수 있어요.
제 작업인 ‘Not in your dictionary(네 사전에는 없다)’, ‘Bongcabulary(봉호단어장)’ 시리즈는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보이는 것은 사실일 수 있으나, 진실은 아닐 수 있으며, 의미의 확장이 본래의 성질을 정의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일방적인 제시와 분별력 없는 수용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위험하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다. 그러니까 받아들여라.’ 이런 목적의 작업은 아닙니다. 주어진 기호로써의 언어를, 작가의 개입을 통해 변화시키고, 그 의미를 관람객에게 전달하기까지의 이 모든 구성이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것은 해석이나 이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차이의 근원에 대한 물음입니다. 상황에 대해 확장되고 의미화 되는 수많은 정의와 정보에 의해 문제의 본질이 가려지고, 중심 문제보다는 무시해도 좋을만한 곁가지의 문제가 본질의 문제로 호도(糊塗)되는 현재의 딜레마를 꿰뚫어 보려는 시도입니다.
모든 현상은 하나의 정의로써 완벽하게 대응되는 답이 되지 않아요. 대립에 대한 괴리와 딜레마는 자연스럽고도 껄끄럽게 서로 공존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한쪽을 매도시킬 필요도, 한쪽을 지나치게 추앙할 필요도 없는 하나의 현상 그 자체로써 말이지요.
2014년 임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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